바티칸 교황 제도의 놀랄만한 수완을 보라!

리차드 베네트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여러 재앙들이 발생하면서 바티칸은 국제 사회에 윤리적이며 경제적인 혁명을 요구하였다. 바티칸은 세계 경제 시스템의 파괴는21세기가 마치기 전에 전례없는 지구의 파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삶의 스타일과 에너지 소비에서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바티칸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던지는 맹공격적인 요구들 중에 최근의 한 예이다. 세계의 각국 내정 문제에 대한 바티칸의 간섭은 이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바티칸 시스템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찾아왔다.

참으로 세상은 교황 프란체스코에게 철저하게 매료되어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터넷 뉴스 사이트, 유투브 비데오 등, 교황 프란체스코는 이 시대의 가장 호감이 가는 영웅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프란체스코가 서서 외치는 플랫폼이다. 교황의 무대가 없다면 아르젠티나 출신의 조지 마리아 버르고글리오는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교황 체계는 전세계를 통틀어 획일적이고 제도화된 종교 시스템으로서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강력하게 서 있으면서도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교황은 엄청한 부와 전 세계적인 통치권을 갖고 카톨릭 믿음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주 – 교황 체계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이상의 로마 카톨릭 교도들을 지배하고 있다). 교황 체계는 지구 상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서  많은 시도에 있어서  최상의 기술을 보여준다. 교황 체계는 하나의 지배 관료 조직이다. 이 조직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교황 자신도 그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예로 교황으로 선출된지 겨우 30일째 되던 1978년 9월 어느날에 교황 요한 바울 1세(알비노 루씨아니)가 살해된다(주 – Vid David Yallop, In God’s Name: An Investigation Into the Murder of Pope John Paul I  (Bantam Books, 1984)). 그 당시 카톨릭 뉴스 서비스인 제니트는 추기경 라찡거가 “그의 죽음은 참으로 예측불가였다. 요한 바울 1세는 건강을 누리는 듯이 보였다”라고 말한 것을 보고하였다. 라찡거는 또한 다른 교황들의 비정상적인 사망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스테반 7세(896-897)의 교살, 스테반 9세(936-942)의 절단 살해, 존 12세(955-964)의 살해, 베네딕트 6세(973-974)의 교살, 존 14세(983–984)의 굶어죽음, 그레고리 5세(996–999)의 음독 살해, 클레멘트 2세(1046–1047) 음독 살해, 다마서스 2세(1048)의 살해, 암살로 알려진 교황 피우스(1939)의 죽음 등을 포함한 수많은 교황 살해들이다. 최근 2013년에는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된 라찡거가 강제로 사임된 것으로 보인다.

교황 체계의 역사에 대한 개요

기독교에 대한 대 박해들이 마치고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만들어낸 4세기와 5세기에 복음은 이교도의 풍습들과 영지주의적인 사색에 물들면서 희석되고 있었다. 하나님께 향한 참된 예배와 성령의 내적 확신은 점차 세속적인 영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교도의 사교적인 관행들은 소위 ‘교회’로 들어왔다. ‘교회’는 진정한 영적인 삶과 경험이 없는, 성경에 생소한 기독교의 외적인 의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폴리션 교회와 후에 발도파가 된 발도 사람들의 역사는 “교회”로 불리는 것이 점점 더 참된 성경적인 믿음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보여준다. 즉, ‘교회’는 신약에 계시된 진리를 붙든 자들을 핍박하는 사악한 집단이 되어가고 있었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더라”(계 17:6). 신약 성경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복음은 신자들 가운데서 내적인 연합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의식주의가 복음을 대치하면서 외면적이고 가시적인 연합체로 구성되는 조직 체계가 만들어졌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그릇된 분리는 교구 통치의 사제 주교적인 독재 체제를 등장시켰다. 이것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양 떼들 위에서 군림하는 성직자 지배 계층으로 확립되어 발전하였다. 15세기 말에는 소위 사제라 불리는 자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성경을 가르쳤던 초기의 복음 사역자들을 대체하였다. 교회는 더 이상 복음에 의해 연합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자들의 교제가 아니라, 대개 주교들과 장로들의 계급층에 의해 지배되는 조직으로 신속하게 변화하였다(주 – Vid 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I, Book I, pp. 3-14.  See also D’Aubigne, Book I, pp.1-34.  역사가 윌리엄 길리(Historian William Gilly)는 초기 5세기에 아퀴타인 원주민이던 비길란티우스(Vigilantius)가 사제 제도의 발전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발전하는 종교 시스템이 권력을 갖게 된 것은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여러 중요한 요소들에 의해 가능해졌다. 서기 330년,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왕좌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이때의 이주 때문에 로마에서는 권력의 공백이 생겨났고 그 공백은 그 당시 발전하고 있던 종교 시스템이 정권을 좀더 붙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두 번째로, 서부 로마 제국을 향한 야만족의 침략은 특히 로마 도시 전역을 휩쓰는 혼란을 가져왔다. 진취적인 종교인들은 이러한 위기들을 놓치지 않고 사용하여 결국 신성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조직을 한 단계씩 세워나갔다. 더욱이 로마 주교는 야만족들을 교화시킴으로서 점점 더 그의 지위를 강력하게 하였고, 그 당시 타락하고 파멸된 사회를 붙들어주는 주요한 통합적인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렇게 하여 바티칸 체계는 서방 제국의 부패와 파멸의 혼동 속에서 승리자로 부상하였고 황제들의 권한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바티칸 체제는 아무 것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영적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그 권위는 모든 왕들과 총독들과 세상의 통치자들을 다스리는 정치적인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부분이 신성 로마 제국이 존재하는 수세기 동안에 걸쳐 싸운 주된 싸움 중에 하나였다. 비록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마침내 바티칸으로부터 세속 정권의 지위를 제거했지만 오늘날까지 바티칸은 영적으로나 세상 권력에 있어서나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포기한 적이 없다.

성례주의의 시작

5세기에 시작하여 그후 수 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황 체계는 야만족의 새로운 부족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므로 이들 새로운 민족들을 다 받아들였다. 오직 은혜에 의해 그리스도만을 믿는 오직 믿음 만으로 얻는 구원의 참된 복음은 세계적인 종교 시스템에 의해 철저하게 버려짐으로써 회개와 믿음의 요구는 사라져 버렸다. 교황 체계는 야만족 부족들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풂으로 ‘교회’로 불리는 곳으로 영입하여 그들 이름을 기록부에 기입하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물과 은혜를 연결시킨 교황 체계의 행위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연결시키는 성경과 전적으로 상충된다. 신약 성경을 보면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하여 성령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고 선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초기 세기로부터 시작해서 물 세례에 의해 거듭난다는 그러한 교훈을 가르치더니 오늘날까지 가르치고 있다. 현재 교황의 [교회법전 문항 849]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례들의 입구인 세례는 실제로 받거나 적어도 바람으로 받는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세례는 적절한 형태의 말과 함께 참된 물을 뿌림으로서만 타당하게 거행된다. [물] 세례를 통하여 남자와 여자들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지울 수 없는 특성에 의해 그리스도께 받아들여지며 [로마 카톨릭] 교회로 영입된다.”

따라서 적어도 5세기 무렵에는 사제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차지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이다. 에베소서 2:8-9절은 이 점을 뚜렷하게 분명히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장 7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지극한 풍성함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자비하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즉, 하나님만이 구원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5세기말부터는 교황 체계는 구원하는 은혜를 흉내내기 위한 시도로서 구원을 위해서 성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성례 제도가 칠 성례로 온전하게 발전하는 데는 수 세기가 걸렸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성례에 대한 공식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새 언약의 성례들이 신자들에게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확증한다”(교리 구문 1129)

이것이 교황 체계를 이끄는 정책이다. 따라서 2015년 5월 3일 일요일에 교황 프란체스코는 성례에 대한 바티칸의 안내 정책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다. 그를 통해 … 우리는 가지들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그분께 계속 연합되어 있어야 할 중요성을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에 의해 접붙임으로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거저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교통 가운데 머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세례에 충성되게 거하여야 하며 기도를 통해 주의 말씀을 고분하게 듣고 복음을 읽으며 성례에 참여하고, 특히 성체 성사와 고해 성사를 행함으로 주와의 친분을 나누는 가운데 자라나야 한다.(주 – www.missionsandiego.org/pope-francis-bear-the-fruits-of-membership-in-christ-and-the-church-regina-caeli-messsage-may-3-2015/)

교황을 실제 수장으로 삼은 시스템의 구축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는 이 시스템을 구축한 장본인으로서 이 시스템의 수장으로서 로마 주교를 세웠다. 그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방법으로 순수한 교회 칙령과 규칙을 국가 법 아래로 가져왔다. 역사가 레 로이 에드윈 프룸은 그때 발생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세번째 대업적은 교회 모임 및 신학에 대한 규칙을 제정한 것이었다. 그는 절대적인 황제 칙령 서신으로 로마 교회의 주교를 ‘모든 거룩한 교회의 수장’으로 앉혔고 따라서 교황의 종교적인 패권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주 –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by Le Roy Edwin Froom  Vol. I, p. 507.)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선포가 교황 직분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지만 로마 주교의 통치권이 향상될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황제는 제국의 멸망을 누그러뜨리기를 바라면서 교회의 일치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마 주교는 제국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 이후로 ‘교황’이라는 직책은 ‘로마 주교’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다. 이제 그는 유스티니아우스의 법령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강압적인 정부의 칼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교회의 일치는 각 사람을 구원하여 시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하는 복음과 성경의 도덕적인 설득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후 8세기가 되자 정권은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체계’의 권력이 자라나게 되자 체계를 이끄는 자들 및 그 밑에서 지배 받는 사람들 모두의 삶에서 부도덕도 커져갔다.

교회의 살해와 고문에 따른 부도덕

1073년은 수세기 동안의 지독한 부도덕으로부터 돌아서는 해였다. 이제 엄격한 훈련은 교황 제도의 표준이 되었다. 교황들의 마음은 육체의 정욕에 물들었을뿐만 아니라 교회 및 세상에서 완전한 패권을 잡으려는 사욕마저 계속 지니고 있었다. 이 즈음 샤를마뉴 계보는 교황의 야망을 저지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있었고 이에 교황 그레고리 7세(주 – 힐더브란드로 알려져 있다.)는 그보다 앞선 모든 교황들을 훨씬 넘어서는 야망을 가졌다. 그는 교황의 통치는 사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라고 확신하면서 영적이든 세상적이든 모든 권위와 권세는 “베드로의 보좌”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다. 바로 이 고레고리 7세가 거대한 교황 체계가 될 구조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의 목표는 교회이든 제국이든 모든 지도자들 위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최고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레고리가 예리하게 붙잡은 개념은 세속적인 영역에서 교황이 다스리려면 하나님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악착같은 야망에 의해 조성된 이 개념은 그때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소유한 엄청난 부와 짝하게 되면서 그의 야망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악한 구현은 그레고리가 재위하던 기간(1073-1085)부터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하더니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1198-1216)와 보니파티우스 8세(1073-1085) 때에는 교황 체계가 영적인 권세와 세속적인 권세를 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알비주아파에 대항하여 십가군 전쟁을 선언하면서(주 – 알비주아파는 기독교 단체로서 그들의 경건한 삶에 있어서 영향력이 컸는데 로마 카톨릭은 그 단체를 정죄하였다. 조지 스탠리 파버는 1838년에 쓴 책을 통해 교황의 사역의 예를 제시하였다. “랑그도크의 고문관이 채택한 계획에 따르면 (마니교 이단으로) 고발 당한 알비주의파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정죄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누구든지 그 전쟁에 지원하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으면서 곧바로 연옥을 통과하여 천국에 이를 것을 제시하였다. 그 전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잔인한 전쟁이었다. 모든 마을들과 성읍들이 부차별하게 살육 당하였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장대에서 화형을 당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가장 끔찍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러한 참혹하고 잔인한 살해와 만행의 역사는 수많은 기록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는 “완고하고 야망적이며 영리하고 허망하고 뻔뻔스러웠다. 그는 교황은 참으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예외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깊게 믿었다. 누구든지 그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악한 자가 된다.”(주 – http://history.boisestate.edu/westciv/babylon/04.htm  6/3/2015). 그는 “우남 생크텀”으로 불리는 교황 칙령의 내용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모든 인간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로마 교황에게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모든 인간들에게 선언하며, 말하며, 정의하며, 선포한다”(주 – Henry Denzinger, The Sources of Catholic Dogma, Revised by Karl Rahner, B. Herder Book Co., 1957), #469.).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로부터 교황 피우스 7세까지의 75명의 교황들은 그 끔찍한 6세기의 종교 재판을 통해 신자들을 향한 고문과 살해, 화형, 사유 재산 몰수를 승인하였다(주 – See the Video The Inquisition at: https://www.youtube.com/watch?v=Rx8PdvOELvY). 교황은 참 신자들에게 극심한 고문과 잔인한 살해를 가하였다.

영광스러운 종교 개혁과 악한 반개혁 운동

16세기에 발생한 종교 개혁은 사도들이 선포하였던 성경적인 믿음을 크게 회복시켰다. 성경적인 믿음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교황 제도가 쑥대밭이 되었다. 종교 개혁의 인물들로는 비텐베르크의 루터가 있고 옥스퍼드에 에라드무스와 콜렛이 있고, 캠브리지에 빌니, 라티머, 카트라이트가 있고, 파리에는 레페브르와 파렐이 있었다. 종교개혁의 이러한 지도자들은 그 시대의 고급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베자와 틴텔과 같은 경우는 문학에 있어서 뛰어난 부류에 속하여 있었다. 종교 개혁은 영광스러운 영적 각성이었다. 종교 개혁자들의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로마 카톨릭 시스템의 주된 반응은 반-종교개혁이었다. 반개혁은 예수회 수도회의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영향력을 통해 주로 진행되었다. 예수회원들은 전투적인 단호한 태도로 로마 카톨릭 시스템이 종교 개혁 이전에 누렸던 위치로 회복시키는 운동을 이끌었다. 예수회원들의 의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성경에 기초를 두지 않는 대중은 감상적인 종교 및 신비주의 운동에 악명이 높을 정도로 미신적으로 추종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및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예수회의 신비주의는 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영적인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그러한 무리들에게 로마 카톨릭 시스템은 교황의 영적인 권위와 눈에 띄는 예식들과 효과적인 심리적인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17세기 중엽에는 예수회 수도회는 유럽 전역에 수천수만의 회원을 지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고 또한 종교 개혁의 효력들을 근절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수세기 동안에 걸쳐 예수회 수도회는 기독교적 성경 원칙들과 자유로부터 서방 문화를 전복시키는데 있어서 교황의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교황의 권위를 지지하면서 4세기 동안 반개혁주의적인 주요 노력을 이끌었다. 성례 제도를 회복하였고 강력한 버전의 로마 신비주의 및 미신을 종교 개혁의 성경적인 원칙들을 접하였던 여러 국가들에게 널리 알렸다. 종교 개혁 이래로 현대 시대에까지 로마 교황이 성취한 대부분의 일들은 예수회의 계획과 작전, 그리고 맹신적인 헌신 덕에 이루어졌다. 2015년 6월 1일, 교황 체계는 예수회 출신 교황인 프란체스코를 사용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호메트와 동등하게 놓았다. 교황 체계는 이렇게 함으로서 주 예수님의 절대적인 유일성 및 기독교의 믿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가 발설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 마호메트, 여호와, 알라”였다. 이 말은 전 세계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똑같은 어떤 정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이름들이다(주 – http://nationalreport.net/pope-francis-followers-koran-holy-bible/  6/5/2015). 교황 체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그렇게 거절한 것은 최고의 배도이다.

교황 체계는 자신의 사회 문화적인 시스템을 증진한다.

“공익”이라는 개념은 카톨릭의 사회 교리의 필수 부분이다. 그들은 “공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익은 어떤 실제 사회 속의 각 개인의 특별한 물건들을 단순하게 모아 놓은 것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과 각 개인에게 속하면서도 ‘공동’이어야 하며 계속 공동으로 남아야 한다. 그 이유는 공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공익을 얻는 것과 그것을 증가시키고 그 효력을 보호하는 것은 오직 함께 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사실 공익은 도덕적인 선의 사회적 공동체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Compendium, Sect. 164)

위 언급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자산과 부와 물건들은 결코 사적으로 전체를 소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서는 개인 소유와 모든 물건들은 언제나 ‘공동 재산’이 최고로 수여자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Compendium, Sect. 177, 178).  더욱이 <카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시민 사회의 공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모든 인간 가정의 공익은 국제적인 차원의 사회 조직을 요구한다.”( 교리집, 구문 1927)

교황 체계는 현재 사회주의 경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세속의 정치, 경제, 사회 단체들 가운데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위치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카톨릭 사회 교리는 각 사람이 소위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따라 ‘공익’의 동등한 분배를 가질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유형의 집산주의(collectivism)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각 사람이 각자의 삶에 대한 의무와 선택을 취하게 하는 대신에 정부에 의존하도록 가르친다. 성경 어디에서도 신자들은 삶을 위해 정부를 의존하라는 요구는 없다. 도리어 자기 백성을 위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마태복음 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히브리서 13:5-7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만일 성경이 없고 복음이 왜곡될수만 있다면 카톨릭 교회는 또다시 현재 카톨릭 국가들 내에서 요구하는 도덕적인 권위를 국제적인 차원에서 얻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결론: 우리가 배워야 교훈

교황 체계는 로마 제국 하에서 발생하여 제국의 멸망 가운데서 살아남았다. 서기 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교황 체계가 정부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법적인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에 교황 체계는 그 이후 천년 동안 세속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교황 체계의 세속적인 권력은 16세기의 종교 개혁 동안에 성경과 복음의 회복에 의해 저지되었다. 교황 체계는 17세기와 18세기에는 청교도들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체계는 신성 로마 제국의 멸망 가운데서 살아남더니 20세기에는 ‘주권국가’가 되었고 지금은 금세기에 주요한 권력 행사 국가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교황 프란체스코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로마 교회의 수장이다. 하지만 교황 체계가 여전히 교황의 보좌 배후의 실세이다. 교황 체계는 사탄이 만든 기독교 참 교회의 거짓 작품이다. 참으로 교황 체계는 “불법의 비밀”이다(주 – 살후 2:7. 특이한 이 불법의 비밀은 로마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에게 길을 내어주면서 교황 체계 내에서 점차적으로 생겨났다.)

교황 체계가 수세기에 걸쳐 나타낸 결과는 “불의의 모든 속임”(살후 2:10)이다. 그러한 배도는 위선과 기만에 의해 표시된다. 배도적인 교황 체계는 외부적으로는 의롭고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심지어 택한 자라도 속이려는 것이 그 목표이다.

신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하게 드러난 참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가장 큰 비밀 중에 하나이다(주 – ‘신비’라는 용어는 지금은 보이지만 과거 시대에는 숨겨져 있던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계시하는 가장 큰 신비들 중에 하나는 교회의 신비이다. 교회는 새로운 것이며,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이다.). 따라서 성경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고 선언한다. 이처럼 참 기독교는 정치나 종교 시스템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에 초점을 둔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권세와 지혜와 선함을 보면서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지혜와 선함을 본다. 주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자신 안에 하나님의 특성과 완전함을 지니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 상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법적인 요구를 충분하게 채우셨고 이에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다. 의식적인 성례 거행 및 다른 그 어떤 수단으로도 영혼을 구속할 수 있는 교회 시스템은 결코 없다. 늘 불완전한 집도에 의해 오염되고 자아 중심적인 동기에 더럽혀진 종교적인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 사역만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완벽한 법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에야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둘째 사망이라는 우주적인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또한 그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참조, 엡 1:3-7).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의 양심에 그리스도로 말미맘은 확신 외에는 구원의 다른 길을 허락하지 않으신다(참조, 롬 5: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따라서 주의 말씀은 이렇게 표현한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영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생명과 구원을 약속하는 교황 체계는 실제로는 의식과 부도덕에 종노릇하게 만들고 마침내 죽음과 저주를 당하게 한다.

16세기에 종교개혁 기간을 통해 오직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의 회복 및 구원의 은혜 복음이 없었더라면 교황 체계는 여전히 탄로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교황 체계가 그토록 설치며 활동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신다.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 5:31; 참조 눅 24:46-47).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주 예수께서 교황의 종교 시스템을 믿으면서 인생 전체를 보낸 자들의 귀를 울릴 무서운 말씀을 주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누구도 단지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신성을 믿으며 그분의 완전함과 그의 속죄의 무한한 공로를 믿고 고백한다고 해서 주의 영광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 주께서는 믿으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집약하여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9).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함없이 서 있다. 또한 당신의 삶을 향한 주의 부르심 역시 변함이 없다. 당신은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가? 그분을 믿으면 죄악을 훨씬 넘어서는 생명수의 충만한 은혜가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주께서 부르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한때 유죄 판결을 받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은혜 만으로, 믿음만을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유일한 보증과 피난처로 믿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죄악으로부터 자유할 뿐만 아니라 생명 가운데 다스리게 된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풍성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죽음의 다스림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 그들은 성령과 주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거룩하여지며  그리스도와 꾸준한 교제를 나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영원토록 주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주님만을 믿으라. 그러면 당시은 그분 안에서 안전할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베뢰아 등대 대표 리차드 베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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